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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소우님 2026. 3. 2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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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오늘 저녁, 그저 평소처럼 끓여 먹는 라면 한 그릇에 문득 서러움이 밀려왔다. 돈이 없어서 서럽다기보다는, 이 나이에 이 무슨 추태인가 싶은 자조 섞인 마음 때문이었다. 남들 다 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이 사업한다고 애써 모은 돈과 가족들 돈마저 날리고, 갑자기 빚을 지고, 10여년 전 연봉을 받고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혼자인 내가 참으로 안타깝고,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되지 않는 밤이다.

이런 날은 피울 수 없는 담배만 간절해진다. 그 지독한 씁쓸함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깊은 고민을 나눌 친구 하나 없고, 쓸데없이 시간만 빼앗는 지인들은 곁에 두고 싶지 않다. 가뜩이나 없는 돈과 시간을 내어 만나보아도, 결국 돌아오는 것은 씁쓸함뿐이었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냉소적일까. 나는 나 자신에게 한없이 차가운 인간일 뿐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가벼운 불평불만에는 그다지 감정이 꿈틀대지 않는다. 오히려 메마른 사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한다. 다들 힘들다고 말하지만, 고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말처럼, 주도성 없는 투정에는 냉정해진다. 불의의 사고를 볼 때도 그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인재(人災)라고 판단될 때는 몹시 화가 난다.

하지만 이런 메마른 감정 속에서도, 나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유튜브 쇼츠에서 스쳐 지나가는 간호사의 일화,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보여주는 직업적 존엄성을 마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고, 그래서 아빠의 위대함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는 아빠를 반기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기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맺힌다. 나의 감성은 이렇듯 무언가 거대한 존엄성과 숭고함 앞에서만 반응하는 듯하다.

나에게도 나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존엄성, 혹은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남에게 충고를 건네거나 글로써 무언가를 표현할 주제가 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한국인의 정과 배려, 존중과 예절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고, 후천적인 학습으로 다양성과 개성마저 품게 되었지만, 가진 것 하나 없이 꿈조차 꾸지 않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그저 비참해 보일 때가 있다.

왜 나는 모든 것을 가졌을 때,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찰하지 못했을까. 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 슬픔과 결핍 속에서도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의 영어 이름이 '레이(Ray)'인 이유, 그리고 '소우(小雨)'라는 필명을 지은 이유. 그것은 결국 메마른 땅에 작은 단비가 되어 비를 뿌려주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은 나의 간절한 열망일 것이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갈 때,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그것을 뿌리치고 새 생명의 희망을 품었던 타고르의 시처럼. 누군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그런 시인이자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비록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냉소적인 인간일지라도, 내 글만큼은 누군가의 메마른 마음에 닿아 조용히 스며드는 작은 단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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